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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용재 오닐 <공감>


공감

리처드 용재 오닐

로뎅 갤러리에서 보았던 용재 오닐의 첫 인상은 꾹 다문 입에(입술이 비뚤어질 정도로;;) 무거울만큼 진지한 연주태도로 엄청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조금은 무서운 인상이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난 후 관객에게 꾸벅 인사를 할때 눈가며 얼굴 가득 잡히는 주름을 보면서 '앗! 이쁜 사람이다!' 하고 생각했다. (나는야 눈웃음 매니아!!) 게다가  싸인회에서는 눈 뿐만이 아니라 입이 다물어질 틈 없이 웃고 인사하며 팬 한명 한명에게 정답게 대하는. 말 그대로 '신사'였고 편안하고 자상한 이웃집 오빠였다.

진지하게 정성껏 연주하는 비올라의 아름다운 선율과  정답기 그지없는 매너에 반해 리처드의 팬이 되어버린 나. 그의 리사이틀을 며칠 앞두고 읽은 <공감>은 연주를 듣는 동안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그의 스토리들을 떠올리게 했고 자연스럽게 한곡 한곡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박찬욱 감독이 책의 첫부분에 소개한 글처럼 이 책에는 온통 가족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 비올라 이야기 뿐이다. 할머니를 너무너무 그리워 하고 사랑하는 손자, 어머니의 행복을 닮고픈 아들, 대중이 클래식 음악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연주자로서의 모습이 담겨있다.

책 속에 담긴 비올라 연주가로서의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이렇다.


'연주가는 그 음악에 끝없이 자신을 투사하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데에 봉사해야만 한다.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을 선사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운 날 일하는 사람의 이마에 닿는 바람이 꽃밭을 지나온 것과 퇴비 밭을 지나온 것이 다르듯이, 어떤 자세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은 그대로 전달될 수도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비올라는 내게 책임감을 요구한다.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만큼 그 정수만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라고 말한다. 내가 최선을 다했을 때 사람들은 음악이 주는 마술을 경험하고 행복해한다. 그 모습에서 나는 그 어떤 때보다 행복을 느낀다. 나는 비올라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비올라는 내 삶이고, 내 인생의 전부이다. 또 나의 언어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어머니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인생의 목표로 삼을 만한 일이다. 내가 죽은 뒤에 누군가가 리처드 용재 오닐은 별로 유명하지 않았고 성공적인 음악가가 아니었다고 해도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가리키며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거나 자존심도 없는 예술가였다는 식의 평가를 한다면, 죽은 뒤에도 유감이 많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 한곡 한곡에 대한 감상들도 많이 담겨 있는데, 읽고 나면 실제로 그 음악을 듣고픈 충동이 마구 솟아오른다.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 C장조 D956에대한 감상을 보면...


'이 작품은 분명 C장조인데 이상하게도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냥 기운 없이 늘어져 있는 듯한 슬픔이 아니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격정 같은 것이 느껴졌고, 그러면서도 체념하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의 밝고 환한 느낌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체념하듯 관조하듯 흐르고, 다시 휘몰아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는 마지막에 다시 행복한 느낌을 주었다.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마치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음악 뿐만이 아니라 문학과 미술도 사랑하는 예술가이다.


'내가 가장 먼저 좋아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화가는 샤갈이다. 기본 색을 쓰지 않는 그의 그림은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자신의 인생에 성실히 임하고 열정적으로 꿈을 이루어 나가는 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이 이 책 안에 있었다.
참 멋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