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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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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단지 <비둘기>라는 제목을 읽었을 뿐인데도 오싹하는 기분이 든다. 아주 어렸을적 TV에서 히치콕의 영화 <새>를 본 이후로는 작품 제목에 새가 들어가면 왠지 기분이 섬뜩해지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왔던 새는 비둘기가 아닌 갈매기였지만 사람의 눈을 쪼고 살을 뜯어 먹는 그 장면에서 갈매기는 모든 새를 대표한 존재로 보였으니까.

하루하루를 별 사건 사고 없이 살아가는데에 만족을 느끼는 조나단 노엘은 세상을 등지고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들을 멀리하며 자신만의 우리안에 안주한다. 그런데 어느날! 방문 앞에 비둘기 한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앉아서 복도에는 배설물이며 깃털을 마구 흐뜨려 놓은것이 아닌가!! 소심한 조나단 노엘은 큰 충격을 받고 그동안의 질서가 모두 무너져 내림을 느끼며 자신에겐 천국과도 같았던 그 방을 떠나 도망간다.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역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람을 묘사하는 재주는 뛰어나다는 것을 또한번 느낄 수 있었다. 좀머씨, 향수,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비둘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감정을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해내는 그 글솜씨란~ 번역하는 사람도 꽤나 고생했을듯..

이정도는 되야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는거야. 암.



비둘기의 눈이 미처 다시 뜰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는 후닥닥 방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갔다.안전 자물쇠의 꼭지를 돌리고 부들부들 떨며 비틀비틀 침대까지로 가, 마구 방망이질 쳐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오, 하느님, 하느님.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왜 제게 이다지도 큰 벌을 내리시나이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제발 저를 비둘기로부터 구해 주소서! 아멘!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 모든 것의 잠재성은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진정으로 해보고 싶다>라는 가정에 묶여 있을 뿐이고, 조나단은 마음속으로 여러가지 잡다하게 끔찍한 생각들을 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자신이 그런 짓을 절대로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럴 인간이 못 되었다. 정신적인 곤궁함과 혼란스러움과 혹은 순간적인 증오로 범죄를 저지르는 그런 정신 착란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범죄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행동으로 실행하거나 혹은 말로도 생각을 <내뱉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참아내는 사람이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