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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준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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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조병준
샨티

세상을 떠도는 조병준씨의 따끈한 시집이 드디어 나왔다. 야호!
그동안 아저씨의 블로그를 힐끗거리면서 얼마나 기다렸던 시집인지. :)

'한달에 책 몇권씩 1년에 총  몇권의 책 읽기'를 한해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그 '몇권'이라는 것은 숫자가 크면 클수록 대단한 목표가 되기 때문에 일단 어떤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으면 재빨리 읽고 요점들만 머릿속에 남기고 빠르게 마지막장을 탁! 덮어줘야 목표에 한걸음 다가섰다는 미소가 씨익 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시집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혀. 아무리 두께가 얇은 시집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내용을 공감하려면 그 어떤 두꺼운 책보다도 천천히, 또 어떤 경우는 몇번씩 반복해서 읽어야 하니까.
 
그런데 또 그런 면이 시집의 매력이기도 하다.
시 한편 한편, 아니 한줄 한줄을 읽고 음미하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 책도 천천히 하나 하나 오랫동안 읽을 생각이다.
어떤 시는 이미 블로그나 다른 책을 통해서 보았던 시이기도 하지만 다시 읽으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니깐.
암튼. 내가 참 좋아하는 조병준씨의 시집. 반갑고 또 반갑다.


조병준씨의 시 한편 소개. ^^


나는 천사를 믿지 않지만
-안젤로 혹은 캘커타의 선한 이들에게

이상도 하지
내가 걸어온 길에는
짐승투성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서는
더러운 발톱으로 내 손가락,
내 손등, 내 손바닥에
꼭 한 번씩은 생채기를 내고
그러면 그게 억울해서
다음 길에 만난 어떤 이에게
그 짐승의 이야기를 하고
그 또한 짐승이었음을
그가 어느새 떠나고 없는
나무 등걸의 오후에야 알게 되고
그래서 언제나
늦은 저녁길로만 다니게 되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짐승을 만날수록 천사를 믿어야 한다고,
나는 천사를 믿지 않았지만,
내 길 반대편에서 오는
어린 여행자들에게 타일렀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천사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래서
힘에 부친다는 말도 하기 힘들어서
내가 길을 접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때
한 번 더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싶었을 때
이상도 해라, 저기서
상처투성이 짐승들에게
흉터투성이 양 손으로 서툴게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저 짐승은 누구일까
저 짐승의 이름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