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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해냄
 

"어느날 단 한명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눈이 멀어버린다면? "



'눈먼 자들의 도시'는 1998년 노벨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로서 얼마전 영화로 개봉하기도 했다. 작가는 책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말 그대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것도 한 두 명의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눈이 멀어버린다는 다소 극단적이고 잔인한 설정. (도대체 사회에 무슨 억한 심정이 많았길래!) 이 단 하나의 설정을 제외하면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누구나 상상해볼 수 있는 가정이기도 하다. (책을 읽기 전에 한번 상상해보자. 갑자기 앞이 안보이면 난 무엇부터 찾게될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황당할만큼 갑작스럽고도 우연적이다. 갑자기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린것처럼 이야기의 전개도 순식간에 그 끔찍한 상황 한가운데로 흘러가버린다. 바이러스 때문에? 환경오염 때문에? 저주 때문에? 이유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중요한건 '왜'가 아니다. '어떻게' 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 전개되는가가 관전 포인트! 독자들이여 두눈 똑바로 뜨고 실험실 쥐처럼 어둠에 갇혀 떠도는 저 불쌍한 꼬라지들을 좀 보시라!  한명 두명 눈이 멀어감에 따라 도시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시간감각도 공간감각도 사라졌다. 사방에 악취가 진동한다. 오물에 둘러싸여 허기를 면하기 위해 썩은 빵조가리라도 더듬어 찾아야한다. 앞이 안보이는것 만으로도 한없이 추락해버리는 인간의 나약함이라니.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꿈에 나올까 두렵기까지하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고 모두가 눈이멀어버린 마당에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인이 있어 책장을 넘기는 독자와 함께 그 도시를 모두 지켜본다. 물론 그녀는 그 지옥같은 도시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남아야한다는 점에서 독자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고 있겠지만.

이야기의 설정과 함께 특이한 점을 하나 더 찾자면 사람들의 대화가 서술문과 함께 뒤섞여 있는 텍스트이다. 서술하고, 줄 바꿔서 대사 나오고, 줄 바꿔서 다른 사람 대사나오는 식이 아니란 뜻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사에는 어떤 따옴표도 없다. 즉 여러명의 등장인물이 목소리를 높이다보면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 되버린다. 어쩌면 이것도 눈먼 자들의 도시의 대화법에 동참하는 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목소리와 뉘앙스만으로 상대를 판단해야하는 그들처럼 문맥을 통해 화자를 추측해야하니까...

재미있고, 황당하고, 무섭고, 불편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