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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아르테

'저 사람은 나랑 너무 달라. 나랑 절대로 친해질 일이 없어.' 라고 생각했던 누군가에게서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놀란 경험. 너무나 다른 일을 하고 있어 공통 화젯거리가 없을거라 생각했었는데 비슷한 관심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쏟아냈던 경험. 둘 사이의 관계가 밝게 타오르기 위한 불씨가 되어 주는 그 짜릿한 즐거움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파리의 상류층들만 모여 사는 빌라. 그 중 한 층에 살고 있는 조숙한 소녀 팔로마는 철학을 이야기 하고 심리학을 이해하는 영특한 아이이다. 일류대학에 다니는 언니가 어리석어보이고 어른들의 유치한 행동들에 냉소를 보낸다. 그리고 그 빌라의 수위인 늙고 못생긴 르네. 그녀는 톨스토이를 읽고 클래식을 듣는 특별한 수위이다. 그러나 자신의 특별함이 오히려 해가될까 두려워 남들에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틈만나면 부모를 피해 숨는 팔로마와 평범한 수위로 보이려 노력하는 르네는 일본인 가쿠로가 새로 입주해 오면서 만나게 된다. 빌라의 다른 어느 누구도 몰랐던 이 둘의 특별함을 가쿠로가 알아 보았고 같은 장소이면서 서로 달랐던 이들의 세상이 조우한다. 참 다른 그들의 정신적인 교감과 우정. 소울 메이트라 불러도 좋을듯하다. 

외로운 등장 인물들의 만남도 감동적이었지만 이 책이 매력적인 건  무엇보다 문장 하나 하나에 담긴 깊은 생각이었다. 작가가 철학 선생님이어서일까. 좀 어렵고 관념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이야말로 읽는 사람에 따라 와 닿는 부분이 많이 다른 책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야기의 결론은 좀 많이 안타까웠지만...

다음은 본문 중에서...

인간들은, 행위가 아닌 말이 힘을 갖는 세상, 최고의 능력은 바로 능변인 세상에 살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먹고 자고 생식하고 정복하고 우리 영토를 안전하게 지키도록 계획된 영장류이다. 그런데 이 일에 가장 특출한 사람들, 우리들 중 가장 동물적인 사람들이 항상 다른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들에게 잡혀 먹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말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원을 지키거나 저녁식사를 위해 토끼를 잡아오지도, 혹은 제대로 생식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가장 약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건 우리의 동물적 본성에 아주 끔찍한 모욕이고, 타락이며, 깊은 모순이다.

나는 내 주위의 너무 바쁘고, 만기일에 스트레스 받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오늘에 너무나 탐욕적인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너무 일찍, 인생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만일 사람이 다음 날을 걱정한다면, 그건 현재를 구축할 줄 모르기 때문이고, 우리가 현재를 구축할 줄 모른다면 그건 내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내일은 항상 오늘이 되기 때문에 그러면 끝장이다.

나는 우리가 기분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식에 여러 개의 층을 갖고 있고, 그 층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깊은 사색을 쓰기 위해서는 난 아주 특별한 층에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과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내 자신을 잊어야 하고, 동시에 최고로 몰두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코를 긁거나 또는 뒤로 구르기를 할 때처럼 우리가 작동시키거나 작동시키지 않는 장치같은 것이다.

내 얼굴에도 이미 내 운명이 보일까? 만약 내가 죽고 싶다면, 그건 내가 그 운명을 믿기 때문인데.
하지만 만약 이 세계에서 우리가 아직은 되지 않았지만 그 무엇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난 그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우리가 포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가 사물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보는 순간에 일어나는, 사물의 찰나적인 배열이다.
아마 이것이 살아 있는 것이리라. 죽어가는 순간들을 추적하는 것이.

나는 내 주위의 그 누구에게도 잘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아빠, 엄마, 특히 콜롱브를 원망했는데, 왜냐하면 난 그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었고, 난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병은 너무 깊고, 나는 너무 약하다. 나는 그들의 증세를 잘 보고 있지만,난 그들을 치료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나 역시 그들처럼 병자로 만들었는데, 난 그걸 알지 못했다.

난생처음 나는 '다시는'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느꼈다. 그건 끔찍하다. 우리는 하루에 이 단어를 백 번씩 발음하지만 진정한 '더 이상...다시는'에 직면해보기 전에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