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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도쿄 기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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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하루키의 글은 에세이와 소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취향에 따라 에세이는 좋아하는데 소설에는 손이 안간다든지 에세이보다 소설쪽이 취향에 맞는다든지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소설도 <상실의 시대>,<댄스 댄스 댄스> 류와 <해변의 카프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류의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다. 전자는 일상적인 일들을 풀어낸다면 후자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고 이야기를 관념적인 표현과 은유로 풀어내곤 한다. 내 경우에는 하루키의 작품을 두루 좋아하지만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약간 기이하다고 느껴지는 쪽의 소설을 특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의 소설들을 현실성을 기준으로 그래프에 죽 세워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도쿄 기담집>은 두 분류의 소설 중간쯤에 위치한다. 뭔가 기이하고 수상쩍지만 다른 한편으론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들로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우연한 여행자>, <하나레이 만>,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시나가와 원숭이> 이 다섯개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도쿄 기담집을 이룬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이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한 여인의 남편. 그녀의 의뢰로 탐정이 남편의 흔적을 좇는동안 '뭔가 특별한' 사건이나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특수한 이유가 존재할 것만 같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소설의 소재들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이다. 엘리베이터, 소파, 거울 등. 그렇지만 그것들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너무나 섬세하고 진지하고 또 조심스러워서 당장이라도 비현실적인 특수한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상상했던 비현실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껏 독자의 상상력을 키워놓는 하루키만의 서술법. 매력적이다. 평범한 것으로부터 '기담'을 만들어내는 하루키의 재주가 놀랍다.

여담으로, 이 책을 출퇴근하는길에 한편씩 읽곤 했는데 출근길에 <우연한 여행자>를 읽었던 날의 일이다. <우연한 여행자>는 입이 떡 벌어질만큼 딱 맞아 떨어지는 우연에 대한 경험담으로 아무 관계 없는 어떤 일들이 거의 동시에 똑같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을 때의 짜릿함 혹은 서늘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날 나도 작은 우연을 경험했다. 교정기를 찾으러 치과에 가는 길, 강남대로 어딘가에서 중독성 강한 노래 Neyo의 'So Sick'이 흘러나와 속으로 그 멜로디를 계속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치과가 있는 건물 안에 들어서는 순간 흥얼거리고 있던 그 멜로디가 건물 안 어딘가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우연. 그것도 아침에 '우연한 여행자'를 읽은 바로 그날 저녁에 말이다. 유행하는 노래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는걸 우연이라 표현하는건 어리석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