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요시모토 바나나 <아르헨티나 할머니>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민음사 

그리움이란 모든 것이 달라진 후에야 비로소 싹트는 것,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본문 중


바나나의 책을 한권 사볼까 하고 서점에 들렀다. 흠, 그런데 요즘 책 장사가 잘 안되는 것일까? 왜이리 죄다 하드커버 일색에 분량도 얼마 안되면서 가격만 비싼건지. -_- 책을 사서 보길 좋아하는 나로서도 도무지 지갑을 열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는다.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 때문에 이정도 책값이라면 어느정도 수긍은 해줄 수 있지.) 해서 책들이 잔뜩 쌓인 테이블에 기대어 서서 읽을 수 있을만한 가벼운 책을 한권 집어 들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소설의 인물들은 대략 이렇다. 엄마가 돌아가신 슬픔을 간직한 미츠코와 아내 잃은 허전함에 힘들어하는 아버지. 그리고 홀로 사는 알쏭달쏭한 여성 아르헨티나 할머니.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통이 부족해 뭔가 비밀스러워 보이는 이들에게 짖궂은 별명이 붙곤 하듯, 이 여성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아르헨티나 할머니'다. (홍콩 할머니가 아닌 것이 다행;) 이 셋은 모두 상처가 있고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데 어울리게 된 것일까? 아빠는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동거하고 미츠코는 '아르헨티나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아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소설의 시작은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추억하는 이야기일 것 같더니만 웬걸, 지나간 아픔쯤 휭~ 하니 부는 바람처럼 날려버리고 어느새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또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 녹아들어가는 이야기였다. 어느 사건 하나 평범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이들은 그저 묵묵히 함께 한다. 그리워하고 원망하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을법한 시간들로 보이는데 오히려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흠. 이건 일본인들의 정서인걸까? 쏘 쿨~한? 아님 소설이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걸까? 살짝 아리송하다. 모든 복잡한 감정들은 뒤로한 채 동화같이 예쁜 그림을 곁들여 아주 담백한 문체와 짧은 문장들로 이 독특한 가족을 설명하는 작가. 복잡할거 뭐 있어, 사는건 그냥 사는거야. 기왕이면 그냥 행복하게. 이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장을 덮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