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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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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피천득
샘터


작년 5월 피천득 선생님이 타계하셨다. 20년 넘게 반포 아파트에 사셨다던데 길가다 마주쳤던 할아버지들 중 한분이 피천득 선생님이셨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모르지, 코흘리게 꼬맹이 시절 나에게 선생님이 좋아하셨다던 아이스크림 하나를 쥐어주셨던지도. 4년전쯤인가? 본당 신부님께 수필집 <인연>을 빌려오고선 아직까지 돌려드리지 못했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신부님이 다른 본당으로 가셨기 때문인데, 자필 사인까지 담긴 책인지라 '돌려드려야하는데...'  마음만 가지고선 만나 뵐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반포 본당에 일이 있어 들리신다길래 책을 꺼내어 놓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읽어 보았다. (이 글을 쓰다 말고 신부님을 뵙고 왔는데... 책을 선물로 주셨다. 베드로 신부님 최고 ^-^ )

<인연>은 교과서에도 실린 그 유명한 수필 <수필>, <은전 한 닢>을 비롯하여 (이 글을 패러디해서 쓴 수능 성적표에 대한 글이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멋'있게 담은 수필들을 모은, 피천득 선생님의 유일한 수필집이다.

읽다보면 간결하면서도 소박하고 따뜻한 문체에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문학 작품처럼 다가온다.

피천득은 딸의 이름 '서영이'로 챕터 한 장의 이름을 지었을만큼 딸에 대한 애정이 절절한 아버지이다. 어머니의 모정 앞에 질투하고야마는 아버지. 서영이, 서영이를 노래하는 그의 글에서 짝사랑으로 가슴앓이하는 이의 애절함마저 느껴진다.  책을 읽다가 어머니가 한낮의 따뜻한 태양이라면 아버지는 집 앞의 가로등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머니의 모정에 아버지의 부정이 가려지기도 하지만은 아버지는 늘 묵묵히 어두운 곳을 밝히고 계신다. 나는 밤 늦게 집에 돌아갈때나 외로이 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을 고마워하지만, 아버지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같은 길을 비추며 기다리고 계시겠지? 그런데 어쩌다 한번 가로등이 깜박 깜박 거리며 제 기능을 못할라치면 매정한 딸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다. 아빤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훽하니 돌아서는 딸. 그렇지만 가로등은 잠시 바라본 뒷모습도 사랑스러워 집 안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빛을 비추어준다.
'서영이' 챕터를 읽는 동안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었다.

'서영이와 난영이'를 읽으면서는 입가에 절로 웃음이 묻어났는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 난영이를 끌어 안고 있는 피천득 선생님의 어린아이 같은 사진을 보고 아 얘가 난영이구나 했다.

참으로 멋이 담긴  행복한 글들이다. 책 서문에 산호와 진주가 소원이지만 될 수 없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주워 모아 '산호와 진주'라 이름 붙이겠다고 하였지만, 진주와 산호보다 아름다운 조약돌과 조가비들인지라 바다 깊숙히 들어갈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나는 수필이 좋다. 참 좋다. 공일오비의 <수필과 자동차>처럼 노래 제목에 떡하니 자리잡고 앉아 왠지 모를 낭만을 풍겨주는 수필의 향기가 좋고,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한 장으로 담아주는 수필의 재주가 좋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인연

멋있는 사람은 가난하여도 궁상맞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 폐포파립을 걸치더라도 마음이 행운유수와 같으면 곧 멋이다. 멋은 허심하고 관대하며 여백의 미가 있다. 받는 것이 멋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이 멋이다. - 멋

청춘이 짧다고 하지만 꽃같이 시들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 서영이